우상호의원 우현 안내상, 이한열열사

 

- 우상호의원 우현 안내상, 이한열열사

- 국회의원 우상호 프로필

 

 ‘썰전’에서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故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의 선두에 서 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화 1987에서 강동원씨가 고 이한열열사의 역할을 맡았죠.

 

 

우상호 국회의원
출생1962년 12월 12일 (만 55세), 강원 철원군 소속더불어민주당 지역구서울 서대문구갑

학력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외 2건

 수상2016 제13회 지역신문의 날 국회의원 부문 의정대상  외 3건

경력2016.05 제20대 국회의원  외 18건

 

 


 
이날, MC 김구라는 이와 관련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소개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 속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의 사진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연세대학교 학생 故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영정 옆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상호 의원은 “사진을 잘 보면, 우현씨 머리는 삭발 한 것이다. 이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이다”라고 사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배우 우현씨의 아내는 같은 배우인 조련씨죠.

조련씨의 나이는 1970년생입니다.

슬하에는 아들이 있죠.

 

 

 

또한 우상호 의원은 “우현 씨를 워낙 오래 만났는데, 나는 우현 씨가 못생긴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와서 1위를 해 놀랐다“라고 이야기해 현장에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썰전' 우상호 의원이 배우 우현과의 인연을 밝혔다.

11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시사 교양프로그램 '썰전'에서는 6월 항쟁의 선두에 서 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출연했습니다.

 


이날 '썰전'은 故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우상호 의원과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우현의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우상호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우현은 사회부장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우상호 의원은 우현과의 인연을 공개했다. 그는 "우현이 '무한도전-못친소 편'에 나왔을 때 이 사람이 못생겼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는 한번도 이 친구가 못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때는 상당히 귀여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우상호 의원은 사진 속 우현이 삭발한 이유에 대해 밝혔습니다.
 

 

그는 "4.13호헌조치 때 연세대생들이 항의를 하면서 총학생회 4~5명이 머리를 밀어야 했다. 그래서 단식을 할 것인지 삭발을 한 것인지 물었더니 우현은 못 굶겠다고 말했다. 결국, 제가 단식을 하고 우현의 머리를 제가 직접 밀어줬다"고 밝혔습니다.

 

 

 

1987년 6·10 국민 대회를 하루 앞둔 6월9일, 연세대학교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이한열 학생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였습니다. 특히, 박종철 고문 사건 이후 발생한 일이어서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 사건입니다.

 

 

 

과거,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여 벌이는 시위가 계속되면서 이른바 6월 민주 항쟁의 정점에 이르게 된 일입니다.

 

어린 시절

이한열은 1966년 8월 29일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서 이병렬과 배은심의 2남 3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전남 화순에서 지냈으며, 광주로 유학하여 광주 동산초등학교와 동성중학교를 나왔습니다.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에 벌어진 1980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보고 학생운동에 투신을 결심하게 됐다. 그뒤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대입 시험에서 낙방하였다고 합니다.

그뒤 1년간 종로학원에서 재수후,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활동하였죠.

 


6월 항쟁

1987년 6월 9일, 다음날 열릴 예정인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맸다고 합니다.

 

 

 

이후 7월 5일 22살의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 일부 전경이 시위진압 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 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머리에 맞은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한열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 학생(도서관학과) 이종창에 의해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사진을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이 촬영하였죠.

 

 

 

중앙일보, 뉴욕 타임스 1면 머릿기사에 실리기도 하면서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의 잔인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87년 7월 9일 그의 장례식은 '민주국민장'(民主國民葬) 이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이 진행되었는데, 연세대학교 본관 → 신촌로터리 → 서울시청 앞 → 광주 5·18묘역의 순으로 이동되며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추모 인파는 서울 100만, 광주 50만 등 전국적으로 총 16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배우 안내상씨와 우현, 그리고 국회의원 우상호의원의 의외의 인맥이 놀랍네요.

영화 1987을 보며 다시금 지금 우리가 있는 대한민국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어린나이에 나라를 위해 몸바쳐 희생한 이한열열사,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열사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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