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란 딸 박성신 사망, 남편 이혼사유는?

 

- 박재란 딸 가수 박성신 사망

- 박재란 남편과의 이혼사유 및 이혼이유는?

 

’여든이면 어때서‘ 청춘을 노래하는 박재란 ‘산너머 남촌에는’을 통해 현미, 한명숙과 함께 60년대 여가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 던 박재란씨가.

오랜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죠.

사람이 좋다에서 그녀의 인생 굴곡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결혼과 이혼으로 연예계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던 그녀. 그런 그녀가 지난 해 ‘꼴찌면 어때서’를 발매하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느덧 여든의 문턱을 앞둔 그녀지만 마음만은 청춘이다.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 매 어디를 봐도 최소 20년은 젊어 보이는 그녀입니다.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고 핑크색 의자 에 앉아 아침으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먹는 그녀가 여든이라는게 믿기지 않네요.

박재란, 가슴에 묻은 딸을 위해 노래하다 이혼 후 돌연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입니다.

 

 

 

그러나 이역만리 타국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비자 문제로 감옥에 가기도 하고 교민에게 당한 20억 사기에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네요.

연이은 악재에 건강마저 잃어 두 차례의 대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모자 라 지난 2014년에는 막내딸을 심장마비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녀입니다.

그녀의 딸은 박성신이죠.

 

 

 

박재란의 막 내딸인 박성신은 ‘한번만 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가수입니다.

딸이 떠난 지도 어 연 4년이 됐지만 자신의 재능을 다 펴보지 못한 채 져버린 막내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는 박재란씨입니다.

 

 

딸의 몫까지 노래하기 위하여 오늘도 무대에 오르는 그녀입니다.

 “막내는 성격이며 재능이며 날 빼닮았어요. 매일 딸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요. ‘네가 못 이루고 갔던 것 백분의 일이라도 엄마가 하고 가겠다’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제가 그 나머지를 해야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딸의 몫까지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무대에서 노래도 열심히 해야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막내딸마저 잃고 유일하게 남은 가족은 큰 딸 박성은 씨. 하지만 큰 딸마저도 남편 의 사업 때문에 중국으로 이민을 떠난 지가 어연 20년이 흘렀습니다.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인 손녀, 손자들도 모두 중국 북경대에서 학업을 이어가느라 1년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것이 실상이라고 합니다.

 

 

영상 통화로 그리움을 달래 보지만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역부족입니다.

항상 해피바이러스를 뿜어내다가도 불이 꺼진 집으로 들어갈 때면 어깨 가 처지는 그녀입니다.

 

 

 

 하지만 노래가 나오는 무대에선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즐겁 게 노래하는 78세의 최고령 가수 박재란. 그녀의 유쾌한 일상이 공개됩니다.

허영란, 배우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다 17살의 나이로 MBC 청소년드라마 ‘나’로 화려하게 데뷔한 허영란입니다.

 

 

그녀는 SBS 시 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권오중을 짝사랑하는 ‘허 간호사 역’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가 가득할 것 같았던 연예계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근 거 없는 열애설 및 다양한 루머에 시달려야 했던 허영란씨라고 하네요.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 로 소속사와의 문제까지 겪어야했습니다.

그녀가 운전기사가 된 이유는?! 내조의 여왕 영란 새댁의 신혼생활기 결혼 3년차 새댁 허영란입니다.

 

 

지난 2016년 동갑내기 연극배우와 결혼을 한 그녀. 연극 상 대역이었던 김기환 씨는 연기를 할 수 없어 우울했던 시기에 허영란을 웃게 해준 사 람이었습니다.

 수입도 변변치 않은 무명 배우였음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 다 뜨거웠던 김기환 씨. 그녀는 결혼 후 남편 내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직 무명인 남편 이 영화사에 프로필을 돌리기 위해 서울이라도 가야할 때면 운전을 자청하는 그녀. 연기 선배로서 조언은 물론 매니저 역할까지, 내조의 여왕이 따로 없는 영란 새댁이라고 하네요.

조금씩 소박하게 행복을 키워나가는 그들의 알콩 달콩한 일상이 공개됩니다.

“전 남편의 끼와 열정을 인정하고 믿거든요. 사실 그 열정 하나 보고 결혼한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 그래서 가끔은 대전에 내려와서 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요. 정말 끼가 많은 사람인데... 저도 남편도 몸은 대전에서 있지만 언제나 마음 속 1순위는 연기예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18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는 가수 박재란이 출연해 근황을 알습니다.  
40여 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여유만만'을 찾은 박재란은 "결혼 후 연예계 생활과 가정을 함께 돌볼 수 없더라.

남편에게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밥을 해준 적이 없다. 결국 이혼하게 됐다. 남편에게 잘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일하느라 딸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면서 일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첫 남편과 13년 만에 이혼한 박재란은 이혼의 아픔을 잊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박재란은 "요즘에는 이혼을 참 많이 하지 않느냐. 그러나 제가 인생을 살아온 결과 한 번 결혼했으면 좀 참을 수 있는 선까지는 참고 유지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여자가 당시 이혼한다는 건 죽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울증이 왔었고, 미국에 갈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한국에서 살 수 없더라. 남에게 사기도 많이 당했다.

제가 너무 상처가 커서 한국에 머물 수가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박재란은 "두 딸을 두고 먼저 미국으로 떠났었다. 이후 내 여건과 아이들 아빠 때문에 15년 이상 만나지 못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신문으로 딸인 박성신이 가수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미국 생활 당시 떳떳하게 딸들을 만나러 오고 싶었지만 상황이 안 좋았다"고 밝혔습니다.

 

 

박재란의 둘째 딸 고(故) 박성신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가창상과 장려상을 수상한 후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한번만 더' 등의 히트곡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 박성신은 2014년 향년 4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더욱 멋진 모습을 기대할게요.

남은 시간동안 더욱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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